큰언니표 떡볶이

" 정말 그거면 되겠냐? ㅡㅡ; "
" 엉, 그거면 충분해, 과분해, 그걸 원해. "
" 너 왜 그렇게 못 먹고 사니 T_T 옆에서 xx(조카놈 중 하나)가 웃는다 "

큰언니가 오랜만에 문자를 보냈다. 나름 챙기고 싶었는지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나로써는 다소 부담 & 언니에게도 부담주기 싫어서 하루 날 잡아 퇴근하면서 저녁먹으러 가겠다고 했다. 뭘 해주리, 라고 물었을때 대답했지. " 빨간 고추장 떡볶이. 야채 많이 넣어서, 삶은 계란도 얹어줘야해. " 그것에 대한 언니의 반응이 저것이었다. 큰언니는 우리들 중(..) 음식솜씨가 월등한 최고봉(..)이니 내 요구가 어이없기도 했을 듯. 언니 집에서는 주말에 손쉽게 자주 해먹는 간식이라는데 그걸 요구했으니. 하지만 그럼 뭐, 우리집에서는 귀하디 귀한 음식인데 ㅡㅡa

부모님께서는 빨간 고추장 떡볶이를 " 불량식품 "으로 치부(..)하시는 바람에 지금껏 어무이께서는 우리에게 빨간 고추장 떡볶이를 해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집은 오로지 궁중떡볶이. 커서는 그놈의 빨간 떡볶이를 직접 시도한 적도 있긴 하지만 한 30% 이상 부족한 맛과 나아가 장렬히 실패한 역사도 있을진데 이야말로 귀한거 아니겠느냔 말이야. 그렇다고 요즘 창궐하는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그다지 안 좋아해서. 맵기만 하고 깊은 맛은 없고 점포마다의 특색이 없는 듯 하여. 그런 프랜차이즈 떡볶이 집을 보면 꼭 동네 제과점을 잠식하는 공장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보는 기분이 든다.

우얐든 가기 전날, 약속에 따라 내일 가겠다고 하면서 시간을 맞추려니 큰언니가 다시 묻더만. 정말 그거면 되겠냐고. 난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고 언니가 나에게 고추장떡볶이를 해준 역사적인 날(..)을 기리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가겠노라고까지 했다. 그러자 언니 曰, " 왠 카메라. 되었네. ㅡㅡ; "
그리고 갔더니,

요렇게 이쁘게 정돈된 부재료(..)가 아직 남비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이걸 찍.으.란.다.
쬐금 웃겨서 밑에 저건 뭐냐고 물으니 돌미나리란다. 유기농에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며. 
그러면서 큰언니표 떡볶이는 육수부터 다르다고 하.란.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어쩌고한 육수를 어쩌고.. 그리고 너 오기 전부터 더 맛있으라고 간 배이게 떡과 양념들은 푸욱 끓이고 어쩌고.....
.....큰언니, 자랑하고 싶었구나 T_T

그래서 결과물은 이것.
여기에서도 " 계란은 넣고 간이 좀 베어들게 해줘야지 " 라고 하니 큰언니 曰, " 사진 찍고. "
.....큰언니, 찍히고 싶었구나 T_T

이건 그저 고추장떡볶이가 아니다, 요리다, 라고 추켜세우며(..) 이리 저리 사진찍기.

질 좋은 떡에 어묵도 듬뿍.
확실히 맛은 있었다. 시간을 들여 뽑은 다시마 & 멸치 & 기타 등등의 다시의 깊은 맛에 맵기만 하지 않고 부드러운 단맛이 감도는 고추장까지, 거기에 야채 듬뿍.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던 돌미나리는 의외의 포인트. 향긋 생생한 생미나리가 의외로 떡볶이와 잘 어울려서 신선한 느낌까지 들었다.

형부도 오셔서 떡볶이만으로는 안 된다는 큰언니, 낙지볶음도 하고(너희 형부한테 어떻게 저녁으로 떡볶이를 드시라고 하니? 드립(..) 열녀났슈;;;)

그새 형부는 와인도 한 병 따시고. 오늘의 와인은 1865. 무난히, 부담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와인.
내게는 쬐금, 과거의 오점(..)을 남기게 한 놈이기도 하지만, 쩝.

그러자 언니, 호두와 블루치즈까지 꺼내고..판이 커졌다.
한참을 와인을 마시며 안xx씨는 언제 나온데요, 등등 애들은 학원가고(..) 남은 어른 셋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떡볶이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초콜렛에 커피까지 완벽한 풀코스로 마무리.
기분좋은 알딸딸함을 가지고 돌아오며 흐드러진 아카시아향까지 만끽한 저녁이었다.
나오며 큰형부께 " 술 드시고 싶을 때 불러주세요 ^^ " 하고 왔지만 또 언제가 될지.

큰언니, 이 글 볼 일 절대 없겠지만 맛있고 유쾌한 저녁이었다. 다음에 또 부탁해요 ㅡ,.ㅡa
아, 부모님께 큰언니 & 형부와 와인까지 마시고 온 것은 비밀ㅎㅎㅎ

by der Gaertner | 2012/05/17 15:28 | 이것저것 먹으며 | 트랙백 | 덧글(3)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