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잌 아일랜드, 오랜만에 불타오르게 하는 케이크 전문점 이것저것 먹으며

매사 사생활의 의욕 없음은 온갖 종류의 류를 넘어 1주일에 겨우 한 번 먹는 케이크 질에도 창궐했으니.
근처 케이크 전문점에서 적당히 취사 선택하거나 라벨르x망의 마카롱으로 적당히 떼우는 지경이 이르렀는지라.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이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음에.
.....는 개뿔 ㅡㅡ
이제 좀 정신차리고 살자, 의 일환으로 어제 급 검색질을 해봤다. 근래 당기는 케이크가 전혀 없어서 없던 의욕조차 사그라들 것 같은 모종의 위기감까지 생겼었거든ㅇㅇ 그러면서도 금요일 퇴근시간에 멀~~~리, 강 건너 넘어갈 생각은 전혀 안 생기고 가능한 근처에서, 좀 당기게 하는 케이크가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급 시야에 다시 들어온 상호명이 케잌 아일랜드였다.

정확한 상호명은 Cake from an Island 인데 통칭 케잌 아일랜드인 듯. 예전부터 검색질에 항상 걸렸던 곳이었다. 분당에 있는 건강한 케이크, 정말 맛있는 케이크, 집에서 만드는 케이크, 기타 등등 기타등등.
그런데도 지금껏 안 간 건 위치가 좀 애매해서였다. 집에서 꽤 먼, 분당에서 지금껏 살아도 갈 일이 없던 위치의 아파트 상가 1층. 대로변도 아니라 대로에서 구글맵상 약 800m 안쪽으로 들어가서 위치한 지라 대중교통도 애매, 금요일 퇴근시간에 차 끌고 가기도 애매ㅇㅇ 그런 곳을 더 이상 후퇴는 없다, 라는 기분으로 어제 찾아가 봤었고 결과적으로 급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케이크 전문점을 발견하게 되었다네.
오늘은 그 1탄.

외진 위치의 아파트 상가 1층에 자리잡은 케잌 아일랜드는 케이크 전문점은 으레 가지고 있을 거라 여기는 앰블럼이나 로고, 기타 등등의 식별체가 없었다. 그 흔한 스티커 한 장 없이 걍 시판되는 박스에 얌전히 포장해 주시더라. 저 박스를 열면,

요게 케잌 아일랜드에서 처음으로 가져본 케이크, 레드빈 케이크다.
이곳 케이크는 처음이라는 말에, 케이크를 먹을 사람들의 연령을 물어보시던 사장님이 부모님 야그에 1순위로 추천해주신 케이크였다. 케이크 이름에서 100% 정체를 알 수 있다시피 팥 케이크.
이 케이크를 처음 보고 좀 놀라긴 했다. 뭐랄까, 비유하자면 그 옛날, 카페 라리의 케이크를 처음 봤을 때의 기분?
그 옛날 주렁주렁, 식용류 크림 위에 비슷한 느낌의 꽃송이나 과일들이 잔뜩 올려진 케이크가 대부분이었을 때, 위에 거의 아무 것도 없는 라리 케이크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거든ㅇㅇ
이 케이크는 라리조차도 화려해 보인다, 싶을 정도로 아무 것도 없다(..) 걍 팥크림 아이싱을 한 것이 전부.

상단 데코레이션에는 100% 국내산 팥을 손수 선별하여 씻고, 찌고, 앙금으로 만들어 사용하신다던 사장님의 결과물이 오롯이 올려져 있다. 그것 뿐, 그리고 자르기 좀 편하게끔 대충 조각으로 나눠본 흔적이 있을 뿐이고.

사이즈는 요 정도. 2호 사이즈인 듯.
매장에서 조각케이크를 판매하는데 저 사이즈의 케이크를 그대로 잘라서 쓴다. 즉 홀사이즈용으로 따로 판매하는 1호 사이즈 같은 건 전혀 없는 듯. 사장님 혼자 케이크를 만들고, 손님 접대까지 하는 영업형태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듯.
단면, 단면을 보자꾸나.

세 장의 얄팍한 케이크 시트, 그 사이에 케이크 두께에 버금가는 팥크림이 켜켜히 쌓여있을 뿐.

가까이에서 한 번 더 보자면 이런 느낌.

이런 놈을 오늘의 커피와 함께 먹어주는 거지.
오늘의 원두는 키소의 새로운 시그니처 블랜드인 블루문. 에티오피아의 화사한 산미가 장난 아님요.
그리고 저놈의 맛은 어떤고 하니.

양질의 밀크팥빙수 (ex. 팥고당, 장꼬방) 를 오롯이 케이크로 먹는 기분.
사장님께서는 부모님과 처음 먹어볼 케이크로 이놈을 적극 권장하였으나 솔직히 난 살짝 걸리는 게 있었다. 팥이 들어간 케이크라니, 혹시 팥 고유의 텁텁함이 케이크에서 나지 않을까, 하는 게 그것.
그런데 그런 건 경기도 오산임요ㅇㅇ 텁텁함 따위 전혀 없었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맛의 케이크였다. 은은한 팥의 맛과 향기, 크림에서 풍기는 은은한 우유향, 은은한 단맛. 그런 맛있는 은은함들이 어울어져 입 안에 감돌다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진다. 크림이 저리 많아도 느끼함 따위 하나도 없다. 그 뒤로 진하고 맛있게 내린 커피 한 모금이라면야.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내가자 " 어우, 양이 뭐가 이리 많냐.. " 라시던 어무이께서 깨끗히 다 드셨고, 아부지께서는 몇 번이나 " 맛있다. "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난 오랜만에 좀 불타올라봐도 되려나, 싶은 케이크를 발견한 기분ㅇㅇ

이곳 케이크는 처음이라는 말에 연세 지긋해 보이시던 사장님께서 그러셨지. " 우린 다 이곳에서 내가 만들어요. 팥도, 자몽청도, 유자청도 알알히 내 손으로 직접 까서 말이에요. 원재료 말고는 받아다 쓰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아기들 이유식이나 산모들이 먹어도 괜찮아요. "
자부심 충만한 그 말씀에 허어..했었는데 이 정도면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살짝 외진, 케이크 전문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위치에서 지금까지 케이크를 만들수 있었던 게 이해가 됐고.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좋아하실만한 케이크ㅇㅇ
잘, 맛있게 만들었지만 소박한 외양의 홈메이드 스타일의 케이크 전문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모양 자체가 화려하지 않아 축하 자리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이 모양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므로 패스.
당분간은 이곳 케이크를 가져와볼 생각 ing 중.
한 케이크 전문점의 모든 케이크를 먹어보겠어!!! 라는, 애초의 기치가 오랜만에 불타오르는 기분 만땅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